[기사스크랩] 융합 연구로 바이오영감공학 개척 - 조광현 교수 인터뷰
'이달의 과학기술자' 2월 수상자로 선정된 조광현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석좌교수의 학문적인 열정은 대단하다. KAIST를 수석 졸업하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죽어라고 힘겹게 매달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즐기는데 있다.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생긴다. 그의 학문적 철학이다.
그는 이러한 학문적 철학을 기조로 과학적 연구에 매달려왔다. 그가 일본의 유명한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히로나카 교수는 늦깎이 수학자다. 그러나 수학분야의 노벨상인 필즈 메달까지 받을 정도로 천재였다. 그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겸손하다.
조광현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겸손한 자세는 제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마다 늘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과학자라고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교수님의 업적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 부탁 드립니다. 암세포의 사멸을 제어한다는 내용인데, 예를 들어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원래 세포에는 외부의 자극이나 신호를 받아들여 반응을 일으키기까지 일련의 신호를 전달하고 조절하는 복잡한 분자회로가 존재합니다. 암은 유전변이에 의해 이러한 신호전달회로에 변형이 생겨 세포가 비정상적인 증식을 반복하는 상태가 됨으로써 발생합니다.
다행히 우리 몸의 세포에는 이와 같이 잘못된 세포증식 상태에 빠지게 될 경우 스스로 자폭하도록 하는 장치가 내재되어 있는데 암세포는 교묘하게 이런 세포사멸 신호회로마저 고장을 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체 세포내의 신호전달회로가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동작원리를 전통적인 생물학 실험과 직관적인 해석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항암제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연구팀은 복잡한 생체신호전달회로에 대한 수학모델을 개발하고 대규모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동작의 핵심원리를 파악함으로써 효과적인 약물 타깃을 찾아내고 이를 실제 암세포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IT와 BT의 융합연구를 시도한 것이죠.
▲ 시스템 생물학은 학문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요? 맞춤형 의학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그리고 시스템생물학의 등장하게 된 배경,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부탁 드립니다.
시스템생물학이란 생명현상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어느 하나의 인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구성하는 여러 인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유발되는 것임에 주목하고, 생명체의 근본적인 동작원리를 시스템 차원에서 규명하고 제어하기 위해 수학모델링과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 분자세포생물학 실험기법을 융합하여 접근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생명연구 패러다임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생물학은 환자별로 서로 다른 약물반응의 원리를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맞춤의학을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개발과 재창출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매우 유망한 신기술 융합학문입니다.
▲ 새로운 학문인 ‘바이오영감공학’을 개척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 부탁합니다. 영감이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요?
시스템생물학을 연구하면서 생명시스템이 수많은 환경변화를 거치며 진화적으로 최적화된 설계원리를 갖추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발견들을 토대로 생명체의 동작원리로부터 영감(inspiration)을 얻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공학의 난제들을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아이디어로 접근하여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착안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바이오영감공학(bio-inspired engineering)이란 이름을 짓게 된 것입니다.
흔히 알려진 바이오모사공학(bio-mimicking engineering)과 다른 점은 단지 생명체에 대한 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본 따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생물학적 발견과 이해를 토대로 영감을 얻어 응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 이번 연구는 교수님의 지적대로 IT와 BT의 절묘한 조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공한 전자공학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명공학과 관련된 시스템생물학을 전공하시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요?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자입니다. 특히 복잡한 비선형시스템을 분석하고 제어하는 제어공학을 전공하였으며 박사학위 취득 후 전자공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였습니다. 제어공학에서는 로봇, 자동차, 항공기, 공장 등 주로 인간이 만든 인공시스템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런데 문득 제 몸을 생각해보니 인체도 매우 복잡하게 설계된 제어시스템인데 그런 공학적인 관점에서 연구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명현상에 관심을 갖고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생화학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생명과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그 방대한 발견들이 그저 백과사전처럼 나열만 되어 있을 뿐 이러한 발견들을 토대로 생명현상이 과연 어떻게 일어나는 것인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시스템 차원의 분석이나 이해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실험생물학자인 생물학과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던 생물학 용어들을 익히면서 생물학 논문을 읽어 나갔고 차츰 이해의 폭을 넓히며 생물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신반의하던 생물학자들도 그 분들의 실험데이터를 이용하여 구축한 수학모형과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측결과와 통찰을 얻게 되고 그러한 결과가 다시 실험으로 검증되면서 이러한 새로운 접근이 매우 가치 있는 시도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이러한 융합연구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잘 모르고 우연히 시작한 분야가 뒤늦게 이토록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각광받는 분야가 된 것이죠. 지금은 IT와 BT를 융합한 시스템생물학과 바이오영감공학이 제 주 전공분야가 되었습니다.
▲ 과학의 길을 걸으면서 정신적으로 현실적으로 도움을 준 스승이나 멘토가 있다면요?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과학자로 성장해온 과정에는 하늘 같은 은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중학교 시절 수학선생님이셨던 이동걸 선생님과 박사과정 은사님이신 임종태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이동걸 선생님은 제가 학문적 성장통을 겪는 동안 수학에 대한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든든한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셨고, 임종태 교수님은 학문에 대한 일관된 자세와 올바른 과학자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신 큰바위 얼굴과도 같은 스승이셨습니다.
▲ 과학의 길을 걸으면서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합니다.
제가 이 엉뚱한 융합연구를 개척해오며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유쾌하고 기분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기존 학문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시도로 인해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힘든 경험들이 더 많았습니다.
사실 기존 학문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융합연구를 시도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구는 늘 예상과 다른 결과에 봉착하고 그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 위안이 된 책이 바로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열정의 불씨를 이어가도록 해준 글 귀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어느 전장의 노병이 그토록 좋아했다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기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 인간의 가슴에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 남아 있는 한 팔십 세일지라도 그는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라고 하였던 글귀입니다. 저는 이 글귀대로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로서 연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과학을 이미 시작한 학생들이나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과학인의 자세, 긍지 같은 이야기도 좋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책과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깨우쳐주는 훌륭한 동료들과 많은 토론을 해야 하며, 깊이 사고하는 습관을 키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과연 중요한 문제인가를 파악하는 힘을 키워서 큰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 길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과학자로서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자로서의 삶에 긍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김형근 객원기자hgkim54@naver.com